치카라! 환하게 웃으며 팔을 드는 네가 눈부셨다. 선배들이 졸업하고 나서 부쩍 무거워진 내 어깨를 아무렇지 않게 두드려 짐을 덜어주는 네가 있어서 나는 오늘도 앞장서 코트를 밟고 포문을 연다. 등 뒤에 우리 수호신이 있는데 꼴사납게 몸을 사릴 수야 없지. 날아드는 공을 따라 나도 카라스노도 그리고 너도- 일제히 날아오르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순간, 이 감각! 너와 같은 걸 보고 쫓고 느끼는 이 시간이 짜릿해 절로 입술이 들썩였다. 네가 걷어 올린 공이 나로 이어진다. 단지 그것만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내 작은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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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씨...? 제 허리는 왜 갑자기 두드리십니까...? 왜, 싫어? 아니아니, 시원해서 좋긴 한데... ...?? 드물게 맥락을 잡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이는 쿠로오의 시선을 피한 야쿠가 다른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뭐... 내가 자주 걷어차잖아 그...할 때도 뻐근할 거고... 말꼬리가 점점 줄어드는 대신 쿠로오의 허리를 두드리는 힘이 세졌다. 어이쿠야, 과장되게 허리를 숙인 쿠로오가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하고 운을 떼며 눈을 찡긋거리는 모양새에 야쿠가 와락 얼굴을 찡그렸다. 저거저거 또- 아니나 다를까, 근데 네가 차는 건 내 허리가 아니라 오금... 앜! 앜ㅋ팤ㅋㅋ! 허리를 두드리던 손이 매섭게 등짝을 갈겼다. 아이고, 애인이란 게 사람을 잡네에...! 엄살을 떠는 쿠로오를 야쿠가 찰싹댔다. 이게 사람이 인심 좀 쓸랬더니 지 손으로 말아먹지? 오냐, 아주 작신작신 밟아주마! 앜ㅋㅋ엌ㅋㅋㅋ 사람 살렼ㅋㅋㅋㅋㅋ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야쿠와 피하려는 쿠로오가 한데 엉겨 굴렀다. 흥! 마운트 포지션을 점한 야쿠가 씩 웃자 하하, 양손을 머리 높이에 붙인 쿠로오도 따라 웃었다. 허리에 차암 자신이 있으신가 봅니다, 쿠로오 테츠로 씨? 어디 그 잘난 허리 오늘 끝을 내보자고 덤벼드는 야쿠에게 추임새랍시고 애먼 콧소리를 내다 기어이 멱살을 잡혀 찐한 키스를 받고서야 조용해진 쿠로오가 긴 밤을 헤아렸다. 배부른 고양이가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나한테 왜 이래요? 꽉 다문 잇새로 애원이 샌다. 쿠로오 씨는 그런 의미로 절 좋아하지 않잖습니까. 폐는 안 끼칠 테니 혼자 진정하게 좀 놔두라고 버둥거리는 아카아시를 도망치지 못하게 당겨 안은 쿠로오가 수긍했다. 맞아, 나는 널 동정해. 확인사살당한 아카아시가 얼굴을 가렸다. 차라리 차갑게 내쳤으면 하는데 외려 가까워지기만 하는 쿠로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카아시. 귀를 막아도 피할 수 없었다. 빗물처럼 스미는 목소리가 꽉 메인 가슴에 연이어 파문을 그린다. 같은 마음을 돌려주진 못해도 말이지. 네 얼굴이 어두우면 걱정되고, 덜 힘들었으면 좋겠고... 동정도 관심의 일종이잖냐고 아카아시를 다독이는 목소리가, 손길이 쓰면서도 달았다.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아카아시의 귓가에 재차 꿀이 혹은 독이 쏟아졌다. 이런 마음이라도 네 곁에 있어주고 싶다잖아. 네가 바라는 본인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잡아보라고 속삭이는 쿠로오는 남의 일인 양, 아카아시를 달래는 데만 신경을 기울였다. 전력으로 날 반하게 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보고 나서,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면 원망하든 어쩌든 상관 안 할 테니까 시도는 해보라고, 응? 당신은 정말... 아카아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쿠로오가 친절한 건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쯤이면 해도 너무했다. 자자, 그래, 웃는 게 낫다고 너스레를 떠는 쿠로오와 드디어 눈을 마주친 아카아시의 눈가는 약간 빨개도 그럭저럭 평소대로였다. 역시 아카아시! 텟쨩은 이래서 아카아시 군이 좋아요 꺄악- 부러 방정맞게 구는 쿠로오에게 아카아시가 차분하게 선언했다. 좋습니다. 쿠로오 씨도 오케이하셨으니 어디 한번 넘어갈 때까지 찍어보죠. 이야, 박력 넘치네. 다음부터 각오하라는 데도 태평하게 감탄이나 흘리던 쿠로오가 문득 빙그레 웃었다. 좋아해줘서 고마워, 아카아시. ...반하게 해보라더니 도리어 이쪽이 다시 반할 판이었다. 아까까지의 진지한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벌개지는 얼굴을 감추지 못한 아카아시를 낄낄 놀리다 기어이 매를 번 쿠로오는 어쨌든 한결 안색이 나은 아카아시에게 한시름 놓았다. 역시 죽을상하는 것보단 씩씩한 쪽이 나았다.
새장은 완성되었지만 그 문은 늘 열려 있었다. 잠글 필요가 없었다. 늘 원기 왕성하게 웃고 떠들고, 때로는 풀이 죽었다가도 마지막에는 항상 절 돌아보며 아카아시! 부르는 보쿠토, 결국 제게 돌아오는 보쿠토에게 만족한 아카아시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포위망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헤이헤이헤~이! 그거 가지고 되겠어 아카아시? 보쿠토가 팔짱을 꼈다. 좀더 욕심내보라고,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갖고 싶지 않냐고 서슴없이 치고 들어오는 보쿠토의 큼직한 눈동자가 맹금류의 그것처럼 번뜩인다. 반안을 뜨는 아카아시에게 성큼 다가서 마지막 한 걸음을 스스로 좁힌 보쿠토가 보란 듯이 팔을 벌렸다. 자! ...정말이지, 보쿠토 상은 이길 수가 없다니까요. 아카아시가 천천히 팔을 뻗었다. 보쿠토에게 닿는다. 아카아시는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새장의 문을 닫은 보쿠토를 기꺼이 맞았다. 새장이 완성되었다.
아카쨩☆ /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 그치만 부엉군은 그쪽 주장씨가 더 어울리는걸~ / 왜 그렇게 별명으로 부르고 싶어하시는데요... 평범하게 이름으로 불러, / 앗 그럼 케이쨩♡ 나는 토오루♡라고- / 사양하겠습니다.
소 군, 손 좀. 순순히 손을 내민 우시지마는 저만한 남자애가 덥석 손을 잡고 주무르는 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전국 탑3 에이스 스파이커답게 거칠고 굳은살이 가득한 손바닥을 꼼꼼히 살핀 쿠로오가 제 손과 번갈아 보더니 부러운 한숨을 쉬었다. 난 아직 멀었네... 그러다가 문득 어느 한 점을 스치는 손길에 순간 고동이 튀었다. ? 이럴 땐 본인보다도 눈치 빠른 쿠로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느스름하게 휘었다. 어라라, 소 군. 여기가 약한 거야~? 어디 여기는? 여긴? 손을 뺄 틈도 주지 않았다. 아까까지와는 명백하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손바닥이며 손목 부근을 더듬는 통에 다른 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깨무는 우시지마의 다리 사이로 마침내 무릎을 들이민 쿠로오가 힐쭉, 고양이마냥 제 입술을 핥았다. 우시지마는 불룩해진 앞섶을 지그시 누르며 다가붙는 쿠로오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당장 불이 붙은 몸부터 식히자고 판단한 우시지마가 따르는 대로 쿠로오는 아주 맛있게 먹어 치웠다.
최근 들어 키스할 때면 후타쿠치가 인상을 쓰는 빈도가 늘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한 쿠니미도 하루, 이틀... 일주일 넘게 끙끙대면서 여태 병원에 안 갔다는 후타쿠치의 고집에는 고개를 저었다. 질색하는 후타쿠치의 뺨을 쿡 찌르자 부은 잇몸을 건드렸는지 펄쩍 뛰면서 참기는 뭘. 지그시 따라붙는 시선에 후타쿠치가 딴전을 피웠다. 고개를 저은 쿠니미는 버릇처럼 캐러멜을 한 알 까먹으려다 말고 멈칫, 도로 집어넣었다. 그럼 같이 가요. 자기도 충치 검진하게 같이 가자는 쿠니미 덕분에 후타쿠치만 우거지상이었다.
넌 어째 나만 보면 졸려 하냐고, 설마 내 얼굴 때문이냐고 우스갯소리로 타박하면서도 아카아시가 눕기 좋게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제 다리를 두드리는 엔노시타가 좋았다. 가물거리는 눈으로 엔노시타의 허리를 끌어안고 누워 있자니 잠이 올 듯 안 온다. 눈만 굴려 제 머리맡에서 책을 읽는 엔노시타를 올려다보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아카아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없이 따라 읽어보고 있었다. 그럴 듯한 구절도 아니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전공책의 일부분일 뿐인데 벙긋거리는 입술의 움직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치카라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다. 케이, 지? 당황한 엔노시타가 책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거 전공책인데? 전공도 다르면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카아시한테도 잘 보이게 보여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읽어줘, 조르는 목소리는 아카아시가 맞는데... 도무지 의도를 짐작하지 못한 엔노시타가 눈썹을 내려뜨렸다 하는 수 없이 조금 전까지 읽던 부분을 마저 읽었다. 시 낭송이나 발표 준비도 아니고 졸지에 전공책을 낭독하게 된 엔노시타는 처음에는 머뭇머뭇 두어 구절을 우물거리며 아카아시를 힐끔거렸다가, 제 허리를 고쳐 안고 본격적으로 잠을 청할 태세인 아카아시를 보고서야 아하 했다. ...해서 그의 생애는...... 이과인 아카아시에게는 거리가 먼 내용일 텐데도, 엔노시타가 읽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귀를 기울이며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아카아시의 팔에서 툭 힘이 빠졌다. ...하였다. 행여나 아카아시를 깨우지 않게 조심조심 책을 치운 엔노시타가 잠든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감았다 풀었다 손장난을 치는 얼굴이 온화했다.
온갖 폼 잡는 짓도 바보짓도 마다 않고 낄낄거리고 어울려 놀다가도 본격적으로 기가 산 보쿠토가 선을 넘을라 치면 교묘하게 발을 빼는 쿠로오의 작태를 더는 두고볼 수가 없었다. 밀당도 정도껏이지... 어떻게든 책임지시죠. 저대로 두면 귀찮습니다. 근래에 들어 부쩍 시무룩한 보쿠토를 대신해서 한 마디 하는 아카아시나 쿠로, 귀찮아... 자기까지 말려 들게 하지 말고 확실히 하라는 속뜻이 숨은 소꿉친구의 지원 아닌 지원사격이나 일침 놓는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아니 난 이대로가 좋은... 헙. 보쿠토 상을 말려 죽일 작정이냐는 눈초리에 찔끔한 쿠로오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갑니다 가. 의기소침한 보쿠토에게 향하는 쿠로오를 배웅한 둘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대체 왜 남의 연애에 대신 속을 썩여야 하는지 머리가 아픈 켄마와 아카아시, 창창한 열일곱 청춘이 빛바랬다.
너른 들판에는 까마귀를 부리는 카라스노가, 강가를 낀 숲속에는 세이죠의 잎새가 나부끼고, 꺼지지 않는 불로 두드려 쌓은 다테의 철옹성은 견고한 데다, 드높은 하늘을 가로질러 흰 새들의 왕이 쉬는 호수가 있다는 시라토리자와까지- 네 세력이 부딪치는 격전지에 찾아든 두 무리는 고양이와 부엉이의 탈을 쓰고 무해한 척 굴었지만 과연 지나가는 길이기만 할까? 기존의 세력다툼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신진 세력의 등장에 일대의 눈과 귀가 모조리 쏠렸는데도 태연한 대장 고양이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슬슬 일하러 가보실까~ 헤이헤이헤이! 혼자만 날뛰면 섭하지! 부엉이의 눈을 따돌리고 너네만 재미 볼 생각일랑 말라고 눈을 부릅뜨는 친구에게 고양이 용병단을 대표해서 웃기지도 않는 까만 고양이 가면을 쓴 남자가 웃는 듯 눈을 가늘게 했다. 네네, 알아 모실 테니까 얼른 가면이나 쓰시죠~ 아차차! 내 가면! 좀전까지 당당하게 뽐내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허둥지둥 짐을 뒤지는 대장을 보다 못한 부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비켜 보세요. 마음만 급해 가지고 헛다리를 짚는 대장을 뒤로 한 부대장이 바로 가면을 찾아내자 부엉이 대장이 반색했다. 얼씨구... 신나서 부엉이 가면을 뒤집어쓰다 이번에는 앞뒤를 바꿔먹은 친구에게서 눈을 돌리자 얼굴을 감싸쥔 저쪽 부대장이 보였다. 토닥토닥 부대장의 어깨를 두드려준 대장 고양이가 우드득 소리가 나건 말건 가면을 휙 돌려 정위치로 맞췄다. 아, 아, 아파파!!! 엄살을 부리는 부엉이 대장의 덜미를 나꿔채는 건 순식간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부리나케 사라지는 두 인영 뒤에 남겨진 부엉이 부대장이 반안을 떴다. 군말없이 용건만 마치고 돌아오면 좋겠습니다만... 그럴리가 없겠죠. 안다.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빨리 왔으면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